언젠가 한 사람의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의 영혼을 알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격언이라 해도 좋을 만큼 일리 있었다. 책장은 한 사람의 지적 세계가 지나온 길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가 도달하고 싶은 정신적 단계나 이상향을 보여준다.
그러니, 한 인간의 내면의 지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말을 듣고 내 책장을 보니 수치의 파도가 밀려왔다. 내 책장은 얄팍한 내 영혼의 깊이를
처참히 드러내고 있었다.
반성 차원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종종 한다.
한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하니 사람들이 나름대로 깨달은 바를 터놓았다.
누군가는 “휴대전화기 속 사진첩을 보면 한 사람이 삶의 서사를 기록하는 방식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이 인생 서사를 인물 중심으로 기록하는지, 일상을 아름답게 해준 풍경 중심으로 기록하는지,
아니면 (나처럼) 입을 즐겁게 해준 음식 위주로 기록하는지, 스마트폰 속 사진들이 예증한다고 했다.
어떤 이는 “검색 기록을 보면 현재의 욕망과 불안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남에게 차마 하지 않는 질문을 검색창에 입력한다며 말이다.
다른 어떤 이는 “웃는 포인트를 보면 세계관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타인의 실수나 약점을 보고
승리의 웃음을 흘리는지, 언어유희가 주는 엉뚱한 결합에 웃는지에 따라 그 사람이 품고 있는
세계관이 웃음과 함께 새어 나온다는 뜻이었다.
우스갯소리도 빠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라며 말을 시작하는 사람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전까지 자신이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해 왔는지 자백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말이다.
심지어 회를 초장에 찍어 먹는 사람을 믿지 않는 이도 있었는데, 그에 따르면 바다를 만났는데
그 향을 음미하지 않고 단맛과 매콤한 맛을 찾는 이는 삶을 차분히 즐길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잊지 못할 말을 들었다.
친한 형이 한 말인데, 그는 “한 사람의 일요일 아침을 보면 그 사람이 현재 무엇을 가장 바라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요컨대 휴일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것이 그 사람이 일상을 감내하며
가장 원했던 것이라는 말이다. 달리 말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걸 표상한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휴일은 다르다. 나의 경우에는 토요일이 휴일이다.
참으로 공감 가는 말이라 지난 십오 년간의 토요일 오전을 돌아봤다.
작가 생활을 시작한 한동안은 토요일 오전에 운동을 했다. 평일에 매일 글을 쓰니 운동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후에는 책을 읽었는데, 지적 배경이 일천했으니 주말에라도 독서를 하며 영혼의 지경을
넓혀보려 한 것이다. 그러다, 한동안은 뉴욕타임스를 종이신문으로 카페에서 읽었다.
소설만 쓰고 살다 보니 영어도 잊고 이 세계의 실용적 지식과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마다 늘 좋아하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곁들이며 읽었으니 그 시간 자체가 나에게는
휴식이자 즐거움 그 자체였다.
마찬가지로, 맘속에 비슷한 충동이 일어 한동안, 토요일 오전마다 스페인어 공부를, 이후에는
프랑스어 공부를 했다. 지금도 토요일 오전에 브런치를 즐기며 프랑스어 문장 읽는 걸 좋아한다.
지킨 것이 있다면, 마감이 턱밑까지 쫓아와 나를 채찍질하지 않는다면, 토요일 오전에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생의 일은 나름대로 아껴둬야(?) 오랫동안 열정을 유지하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요일 오전만 돌아봤을 뿐인데, 지난 십오 년간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지내왔는지 보였다.
그것은 내 영혼이 걸어온 발자취였고, 내면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려주는 욕망의 지도였다.
아울러, 내 정신적 세계가 도달하고 싶은 이상향에 대한 힌트를 제공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종종 묻는다. ‘첫 번째 휴일 오전에 뭘 하세요?’하고.
여러분도 한 번 자문해보시길.
최민석 소설가
출처 - 국민일보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여상(女商) (0) | 2026.05.04 |
|---|---|
| 귀여운 할머니가 되는 법 (0) | 2026.04.24 |
| 모든 것이 권태롭다면 (0) | 2026.04.23 |
| 성공의 80%는 출석 (0) | 2026.04.23 |
| 커피믹스의 아버지 (0) | 2026.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