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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가르치려 않고, 손만 꼬옥 잡아 주기

by maverick8000 2026. 5. 11.

 

 

 

사람은 슬픈 것을 싫어해서, 누군가 눈물을 흘리면 가서 위로해 준다.

행복이란 기쁘고 밝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사실일까? 알고 보니 거짓이다.

슬픈 것이 싫다면서, 슬픈 발라드는 어지간히 좋아하고 부른다.

슬픈 노래에 눈물을 쏟을 때는 위로해 줄 필요 없다. 총 맞은 것처럼 가슴에 구멍이 뚫려도

사실 즐기기 때문이다. 싫다면서 즐긴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심리학자 폴 로진은 이 현상을 '양성적 마조히즘'이라 불렀다.

슬픈 음악, 매운 음식, 쓴 커피, 공포 영화 등 본래 불쾌한 자극이 안전한 맥락에서는 오히려

쾌락이 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현상이 동물에게서는 관찰되지 않는다.

멕시코 마을의 개들은 주인과 같은 매운 음식 찌꺼기를 먹어도 끝내 매운맛을 좋아하지 않았다.

쓴맛을 즐기고 슬픔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만의 능력이다.

 

왜 그럴까. 더럼 대학교 투오마스 에롤라의 한 연구가 단서를 준다.

슬픈 음악을 들을 때 뇌의 보상 회로가 작동하는데, 특히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그 반응이 강했다. 슬픈 음악이 좋은 것이 아니다. 내 슬픔을 알아주는 것이 좋은 것이다.

사람은 공감을 좋아하는 센티멘털하고 멜랑콜리한 존재였다. 그래서 공감에는 힘마저 느껴진다.

 

어린이는 쓴것을 싫어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인생의 쓴맛을 좀 보고 나면, 사약 같은 에스프레소에

매력을 느낀다. 그 쓴맛이 없으면 아침이 시작되지 않는다.

불쾌하고 부조리한 전위 음악을 듣고, 기괴한 현대미술 앞에 서서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은 삶과 공동체에서 불협화음을 겪기 때문이다.

 

신앙과 직업 때문에 어릴 적부터 오랜 세월 성경을 읽었다.

잠이 솔솔 오는 목사님의 부드러운 설교만 들릴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거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이야기가 있다. 사사기 19장에서 한 여인은 밤새 집단 강간을

당하고 문지방 위에 손을 얹은 채 쓰러진다. 가장 절망적인 노래도 있다.

시편 88편은 울면서 시작하다가 이렇게 끝난다. "내 친구는 어둠뿐입니다." 해결도, 위로도, 반전도 없는

당혹스러운 성경 본문이다.

가장 적나라한 욕망도 있다. 아가서는 연인의 몸을 오감으로 묘사한 에로틱 시집이다.

 

살다 보면 쓴맛, 어둠, 부조리를 겪는다. 해결은 항상 멀거나 오지 않는다.

누군가의 혹은 무언가의 공감이 없다면, 인간은 생존하기 어려웠을 존재다.

섣불리 가르치려 하지 말고 손을 꼬옥 잡아 주길.

 

기민석 목사·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출처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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