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는 가장 친숙하고 예측 가능한 나의 미래다.
꼭 한 달 전 월요일 새벽에 엄마가 주저앉았다. 오른쪽 골반부터 발목까지 통증이 심해서
발 딛고 설 수 없다고 말하는 엄마는 겁에 질려 있었다. 그 말을 듣는 나 역시 무섭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루 전인 일요일 오후까지만 해도 엄마는 고향 집 바로 아래에 있는 텃밭에서 나와 함께 일하며
동네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들려주었다.
그렇듯 유쾌하게 헤어진 엄마의 오른쪽 다리가 하룻밤 사이에 고장 나버렸다.
아흔두 살 엄마가 새벽녘부터 몰려오는 통증을 참으며 어떤 상상을 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엄마의 공포부터 누그러뜨리고 싶었다.
인근에 사는 동생네가 달려와 병원으로 모시고 가기 전에, 몇 년 전 목디스크로 인해 내가 겪은
통증과 치료과정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다.
아마 엄마의 통증도 그때의 나와 유사하게 척추 협착으로 인한 것 같다고, 내가 두 번의 주사와
물리치료 후 좋아진 것처럼 지금 엄마의 증상도 병원 치료를 받으면 나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주워섬기듯 풀어놓는 그 말들은 사실 내 안의 두려움을 다독이는 중얼거림이자 간절한 희망이기도 했다.
병원에 도착해 엑스레이와 MRI 검사를 마친 엄마는 척추관 협착 진단을 받았다.
3번과 4번 척추관 사이가 좁아지고 인대가 비대해져서 신경을 누르는 바람에 통증이 발생한
거라고 했다. 그 일 이후 한 달이 지났다. 엄마는 일주일의 입원 치료를 거치며 세 차례
신경 주사를 맞았고, 자고 나면 손톱만큼 자라나는 아이처럼 좋아져서 이제는 지팡이 없이도
천천히 걸어 다닐 수 있게 됐다.
지난 일요일, 하루를 통째 비운 나와 큰언니는 부모님 두 분에게 나들이를 가자고 꼬셨다.
배나무밭 식당에 가서 숯불갈비 먹고, 호숫가 카페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아포가토랑
아버지가 좋아하는 바닐라라테도 먹자는 말에 평소 외출을 꺼리는 아버지가 "그러자"라며
엄마를 부축하고 나섰다.
밤사이 자기 몸을 가눌 수 없게 돼버렸던 당혹스러운 순간부터 많이 회복됐다고는 해도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은 지금까지, 엄마에게는 얼마나 많은 생각이 머물고 가지를 쳤을까.
우리가 함께한 교토와 북해도 여행을 추억하던 엄마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연신 "좋은 날이구나.
이만하기를 얼마나 다행인지…."를 혼잣말처럼 되뇌고, 그런 엄마를 보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슬픔인지 연민인지 안도인지 모를 미소가 스쳤다.
"엄마 아버지, 우리 또 여행 갈까? 5월 가기 전에 가까운 남쪽으로요."
불쑥 나온 내 제안에 두 분의 눈이 반짝 빛나는 걸 나와 큰언니는 놓치지 않았다.
"오늘처럼 여유 있게 다니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지나온 우리 얘기도 해요."
큰언니가 그 자리에서 여행지를 남해로 정했고, 실무담당인 나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한
숙소를 부지런히 검색했다. 그렇게 우리의 미래가 될 5월의 어느 하루가 천천히 지나갔다.
부모는 가장 친숙하고 예측 가능한 나의 미래다.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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