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키’를 키운 지 9개월이 다 되어간다.
아프리카 괴근식물(그락실리우스)이라서 지난겨울, 잘 견뎌 줄 것인지 걱정이었는데,
파키에겐 큰 변화가 없었다. 초록 잎도 그대로였다. 다행이었다.
그러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때, 날이 따듯해지다 갑자기 추워지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에
잎이 전부 갈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다 떨어져 버렸다.
온도가 급격하게 변하는 날에 창문을 열어둬서 파키는 온도의 변화를 그대로 겪었다.
그게 잘못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는 파키가 이미 모든 잎을 잃었을 때였다.
내가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예전과 똑같이 가끔 들여다보고, 잎이 다 떨어진 것 외에
또 다른 변화가 있는지 살펴보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집에 둔 다른 화분에도 새로운 싹이 돋았다.
겨울 동안 빈 화분이었는데 작년에 키웠던 식물이 그대로 다시 자라는 화분도 있었다.
저 화분은 겨울을 어떻게 견뎠을까, 씨앗의 힘이란 그런 것인가 새삼 놀라기도 했다.
파키에겐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 그러다 몇 주 전, 초여름과 같은 볕이 가득하던 날 이후로
파키에겐 새잎이 돋아났다. 쌀알보다 작았다. 새잎이 자란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고 좋았다.
그리고 어제, 손가락 같은 초록 잎이 활짝 펼쳐져 있는 파키를 보았다.
며칠 사이에 잎이 그만큼 자란 것이다. 애초에 가지고 있던 잎보다 훨씬 크고 넓은 잎이었다.
삶의 어떤 시간을 겪어나가며 내가 달라진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려면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전부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더 크고 넓은 잎을 내기 위해선 빈자리가 필요하니까.
다른 내가 되고,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면, 내가 가진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의 어떤 면모들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알아차리고 기꺼이 내려놓아 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도, 목표도, 마음가짐도.
안미옥 시인
[출처]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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