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인간’(有害人間)은 발암 물질 1급에 준한다. 오래된 생각이다.
현재 생존 최고령 인간은 116세 마리아 브라냐스 모레라 할머니다. 지난달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2020년에는 코로나에 걸렸다가 회복해 ‘최고령 코로나 생존자’에 등극했고 여전히 건강하시다.
“늙었지만 어리석지는 않다”며 밝힌 그만의 장수 비결이 있다.
유해인간(les persones tòxiques)을 피하라는 것. 누군가 극도의 울화를 유발하면, 그냥 의식에서
지우라는 조언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최소한 지금 한국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유해한 놈일수록 무자비한 먹성으로 더 크게 생장하고, 해당 생태계를 접수하며, 명줄까지 길어
오랫동안 시야에서 알짱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만만한 동네에서 먹이사슬을 찢어놓는
공포의 잡어(雜魚) 블루길이나 큰입배스처럼, 왕성한 활동량으로 일상의 수면을 끊임없이 뒤집어놓는다.
심지어 TV에도 자주 나온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다.
아르헨티나 작가 베르나르도 스타마테아스가 쓴 책이 있으니 제목이 ‘유해인간’이다.
언어폭력자, 사이코패스, 조종자 등 13종의 유해인간을 일별한 뒤 “후회나 용서를 모르는 사람들”로
이들을 정의한다. 남의 인생을 곧잘 파탄 내지만 결코 사과하지 않으며 “자신의 본모습을 들켰다고
느끼면 상대방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들은 속칭 ‘진실의 주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진실은 자기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일 뿐
다른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다.”
며느리도 모를 진실의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하며 이들은 대체로 성공한다.
늘 궁금하곤 했다. 왜 유독할수록 잘나가는가. 중국 고전 ‘채근담’에 그 답이 적혀 있다.
“저들과 다투면 대개는 군자가 패한다.” 지독하니까. 어렵잖게 몇몇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
이들의 입신양명이 끼치는 가장 큰 해악은 오랜 세월 구축돼온 도덕적 생태계 교란, 세태 문란이다.
능숙한 의태와 파렴치에 기반한 끈질긴 생존력. 작정하고 막지 않으면 모두가 이 섭식 활동을
답습하려 들 것이다. 어느 정도는 이미 그렇게 됐다.
자신의 유해성을 무료 검진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 ‘유해인간 테스트’(The toxic person test)가 있다.
지난 한 달간 126만명이 설문 테스트를 진행했다고 한다.
홈페이지 대문에 “당신은 어느 유형의 유해인간인가, 우리는 모두 때때로 고약하지만 자기 인식이
해결의 첫발이 될 수 있다”고 적혀있다. 누구나 조금씩은 타인에게 유해하다.
그래서 보통은 스스로 살피고 서로 조심한다. 진정한 유해인간은 그러나 끝내 자신의 무해성을 주장한다.
올바른 의사와 자질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들의 자정(自淨)을 기다리다간 잡아먹힌다.
이맘때 각 지자체는 유해조수(鳥獸) 포획을 시작한다. 포수 등으로 특별 기동대를 구성한다.
까치·까마귀는 마리당 5000원, 뉴트리아는 2만원, 멧돼지는 20만원 수준이라 한다.
따지고 보면 꿩이나 직박구리, 고라니·청설모·두더지에게 무슨 악의가 있겠는가.
그저 먹고살려고 발버둥쳤고, 그러다 숫자가 너무 커졌을 따름이다.
배를 채우려 야음을 틈타 논밭을 털고, 가축을 물어 죽이고, 불가피하게 병균과 분변을 날렸을 뿐.
사정은 딱하지만 수렵에도 악의는 없다. 단지 마을의 법도를 지키려는 것뿐이다. 하물며 사람이야.
모레라 할머니께는 송구하지만, 고로 회피는 지금 한국에서 최선이 아니다.
오물은 더러워 피하는 것이라는 냉소, 이것이 유해인간의 번식을 오래 방치해왔다.
국민의 수명, 생명권과 직결되는 문제다. 치워야 한다.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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