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계란부터 먹으리~’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냉면 안의 계란, 튀김 세트 속에 새우튀김처럼 좋아하는 것을 가장 나중에 먹었던 내가
이제 그 순간의 행복을 미루지 않고 살겠다는 이야기였다.
“모둠 초밥을 먹는다면 이제 참치 뱃살부터 먹으리~”라는 선언으로 끝나는 이 칼럼을 읽은 친구에게
“그냥 섞어 먹어! 배고플 땐 노른자, 배부를 땐 흰자랑~!”이라는 메시지가 와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문요한의 책 ‘오티움’에는 심리학자 대니얼 네틀의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등장한다.
한 사람의 10년 후 행복을 예측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건강이나 가족 관계, 돈, 지위가 아니라
‘현재의 행복 지수’라는 것이다. 지금 얼마나 행복하냐가 미래의 행복을 좌우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저자의 따르면 “행복을 미루면 행복의 감각 역시 녹슬며 행복은 우리가 허락한 만큼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행복이 ‘세기’가 아니라 ‘빈도’라는 심리학의 지혜를 담은
좋은 처방이다. 하지만 요즘의 소확행은 자칫 광고업계의 천재적인 마케팅 용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람들의 소비를 부추긴다.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행복에 다가가는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쁨과 쾌락은 분명 다르다. 사랑하는 아이와 실컷 놀아주고 찍은 사진은 언제 봐도 즐겁다.
하지만 한밤의 라면과 치킨은 그 순간 짜릿하지만 아침에 부은 얼굴이 보여주듯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저자의 말처럼 해로운 행복은 손쉽게 얻는 특징이 있다.
계란부터 먹겠다는 말을 선언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친구의 말에 웃었지만
나는 행복이 일종의 ‘자기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의 어느 순간이 아닌, 지금 당장 행복해지겠다는 결심 말이다.
지금 손에 쥔 커피 한 잔에서 느끼는 따스함과 향기에 행복해지는 건, 곧 봄이 올 거란 예감 때문이다.
아직 피지 않았어도 곧 꽃이 필 것을 기대하는 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내 마음에 달려있다.
출처 : 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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