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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詩와 글과 사랑

화병 / 김기주

by maverick8000 2023. 12. 7.

 

 

 화병

 
 김기주 
 
 절간 소반 위에 놓여 있는
 금이 간 화병에서
 물이 새어 나온다
 물을 더 부어 봐도
 화병을 쥐고 흔들어 봐도
 물은 천천히, 이게
 꽃이 피는 속도라는 듯
 조용하게 흘러나온다
 아무 일 없는 외진 방안
 잠시 핀 꽃잎을 바라보느라
 탁자 위에 생긴 작은 웅덩이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꽃잎보다 키를 낮출 수 없는지
 뿌리를 보려하지 않았다 
 
 한 쪽 귀퉁이가 닳은 색 바랜 소반만이
 길 잃은 물방울들을 돕고 있었다
 서로 붙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물방울들에게,
 가두지 않고도 높이를 갖는 법을
 모나지 않게 모이게 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무릎보다 낮은 곳
 달빛 같은 동자승의 얼굴이
 오래도 머물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