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다정함이란 ‘기대하지 않음’에 있다.
많은 사람이 타인에게 보낸 다정함이 다시 돌아오지 않아서 실망한다.
기대한 만큼 돌아오지 않으면 손해를 봤다고 여기고 그러한 삶과의 작별을 선언하기도 한다.
나에게도 그러한 시절이 있었다.
언젠가 어느 중학생이 물었다.
“친구에게 만 원짜리 선물을 했는데 제 생일엔 5000원짜리 선물을 돌려받았습니다.
그 친구와 절교해야 할까요?”
나는 그때 ‘다정함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강의하고 있었다. 그에게 물었다.
“친구에게 선물을 한 이유는 뭔가요?” 그는 친구의 생일이었고 친구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고 답했다.
그 친구가 선물을 받고 기뻐했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친구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어 선물했다면 이미 돌려받은 것 같고, 무언가를 돌려받기 위해
선물을 했다면 거래를 하려고 한 거니까 못 돌려받은 거고요. 학생이 하고 싶었던 건 거래였나요?”
사실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은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다. 타인을 위해 했다고 믿는 선택조차도 그러하다.
“내가 너를 위해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한 것이다, 이것이 내가 옳다고 믿는
삶의 태도와 방식이기에 내 태도의 완성과 마음의 평안함을 위해 이렇게 했다, 나는 너에게 주면서
나에게 다 받았으니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아도 괜찮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면 나는 덜 상처받으며 내가 옳다고 믿는 태도를 지켜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개인에게는 실망할 수 있지만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고 다음 사람을 찾아 나설 수 있게 된다.
그 중학생은 거래를 하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친구에게 비슷한 선물을 돌려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그의 말도 좋았다.
나도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고 늘 잘되지 않아 노력하며 살고 있다.
중학생인 그가 기대하지 않는 다정함을 이해하고 실천해 나간다면 그는 성인에 가까운 사람이 될 것이다.
다만, 좋은 태도를 가지고 그에 기반한 선택을 해 나갈 때, 우리는 더 좋은 어른에 가까워지게 된다.
다정함을 삶의 거래 수단으로 삼으면 우리는 주고받을 것만 계산하며 삶을 선택하게 된다.
그만큼 손해 보는 인생 같은 것도 없다.
언젠가 만났던 그 중학생의 잘됨을 바란다.
좋은 태도를 정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삶을 선택해 나아간다면 그는 나이가 많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어른에 가까워질 것을 믿는다.
김민섭 작가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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