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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330m짜리 아파트 '門柱'

by maverick8000 2026. 6. 16.

 

 

 

전에 살던 동네 얘기다. 신축 아파트 후문으로 들어가면 지하철역으로 통하는 지름길이 있었다.

인근 주민도 자유롭게 오가던 길이었는데, 어느 날 철제 차단문이 들어섰다.

‘소음·범죄 우려로 통행 제한’이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사실 이 아파트는 재건축 허가 당시 단지 내부 길을 개방하는 조건으로 용적률 혜택을 받았다.

구청 직원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시정 명령을 내려도 벌금 100만원 수준이라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뿐만 아니다. 과거 아파트 정문은 그야말로 문일 뿐이었다.

아파트 값이 오르면서 정문 기둥 위로 지붕을 얹더니 이제는 하나의 거대한 게이트로 ‘진화’했다.

디자인 요소를 더한 ‘문주(門柱)’라는 표현을 쓴 것도 이 무렵부터다.

대리석 마감은 기본이고 폭포식 수경 시설에 화려한 경관 조명이 유행이다.

최근에는 인도와 단지 상가까지 통째로 연결하는 ‘초광폭 문주’가 유행이다.

인천의 한 신축 단지는 문주 길이만 330m에 달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문이 아니라 중세 시대의 성벽이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아파트 성벽은 없을 것이다.

 

▶문주가 ‘시각적 성벽’이라면, 국적 불명의 복잡한 이름은 ‘언어적 성벽’이다.

2000년대 초 건설사들이 브랜드를 앞세우며 시작된 네이밍 경쟁은 극에 달한 느낌이다.

센트럴(중심), 포레(숲), 리버(강), 스카이(조망) 같은 외래어는 애교 수준이다.

최근 고가 아파트 이름은 사전을 찾아봐야 뜻을 아는 경우도 있다.

한때 “시어머니가 집 못 찾아오게 하려고 어렵게 짓는다”는 농담이 있었지만, 결국 핵심은 어려운

외래어 이름이어야 집값이 오른다는 생각이다.

호텔식 조식 서비스, 단지 내 워터파크, 최고층 스카이라운지 카페도 등장했다.

아파트에 이런 시설까지 들어서면서 분양가가 천정부지로 뛴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최근 서울시는 행정 가이드라인을 통해 “주변 지역과 단절을 초래하는 과도한 문주 설치를 지양하고,

열린 단지로 계획하라”고 명시했다.

실제로 최근 서울 강남권의 일부 초고가 재건축 단지들은 과도하게 화려한 문주 디자인을 축소하거나

변경하라는 행정 지도를 받기도 했다. 도시 경관을 해치고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판단이라고 한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수백m짜리 대리석 성벽을 세우고 쪽문마저 걸어 잠글 때 집값이 얼마나

높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에 소중한 무언가는 끊기고 단절될 것이다.

초대형 대문이 세워지고 울타리가 점점 더 높아지는 것을 보면서 어떤 반작용이 올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출처 : 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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