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보다 작은 카리브해 섬나라 퀴라소. 첫 골이 터지자 팬들은 우승이라도 한 듯 서로를 끌어안았다.
지난 15일 북중미 월드컵 E조 1차전에서 퀴라소는 강호 독일에 1대 7로 크게 졌지만 팬들은
아쉬운 기색이 없었다. 역사상 처음 밟은 월드컵 본선 무대였기 때문이다.
“월드컵에 온 것 자체가 승리”라며 국기를 흔들고 춤을 췄다. 이들에게 축구는 낭만이었다.
# 섬나라 카보베르데는 16일 H조 1차전에서 우승 후보 스페인과 0대 0으로 비겼다.
스페인은 슈팅 27개와 크로스 40개를 퍼부었지만 끝내 골문을 열지 못했다. 이번 대회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카보베르데는 아프리카 대륙 서쪽 대서양에 있는 군도 국가로 인구는 약 52만명이다.
스페인은 라민 야말 등 세계 최정상급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한 반면, 카보베르데는 무명 선수들로만
구성된 약팀이다.
카보베르데의 40세 골키퍼 보지냐는 역사적인 ‘승점 1’이 확정되자 “평생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람들이 4년에 한 번 열리는 월드컵을 기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8년 인구 390만명의 크로아티아가 결승에 올랐고, 2022년 모로코는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4강에 진출했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환호했다.
세상은 대개 국력과 자본, 인구 규모가 결과를 좌우한다. 하지만 적어도 축구장에서는 다르다.
어떤 이변이 나올지 몰라서, 어떤 낭만 서사가 펼쳐질지 몰라서 재미있다.
우리가 이변에 열광하는 건 어쩌면 현실이 너무 냉혹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월드컵에서만큼은 ‘공은 둥글다’는 말을 믿고 싶어 한다.
강자가 늘 이기지 않고, 작은 나라에도 기회가 있으며,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까지 결과를 단정할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스포츠의 낭만은 승리에만 있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기적을 만드는 순간이고, 어떤 이에게는 그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꿈이다.
카보베르데는 기적을 보여줬고, 퀴라소는 꿈을 보여줬다.
그래서 월드컵에는 때로 승자는 있어도 패자는 없다.
[출처] 국민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