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1959년부터 서울 종로구 뒤편 세검정의 서민형 한옥에 살았다.
올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쯤 그 동네의 재개발이 시작됐다. 할머니와 평생 함께 산 고모는
평생 산 동네도 떠나야 했다.
이번 추석은 할머니와 우리 옛날 집 없이 처음 맞는 명절이었다. 다같이 고모의 새집에 갔다.
새집은 세검정에서 구기터널을 지나면 나오는 은평구에 있었다. 평범한 보급형 주거 건축이었다.
모든 게 새것이었고 내 눈에는 좀 많이 반짝거렸다. 사람들이 잘 잊는 고급품의 조건 중 하나는
품질 지속 시간이다. 그 집에서 본 새것의 광택은 곧 사라질 듯 보였다.
‘이게 오늘날의 인테리어구나’라고 느끼던 때 인터폰이 울렸다.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돌아온 고모부였다.
“이거 어떻게 여는 거야?” 인터폰 앞에서 어르신들이 웅성거렸다.
벽에 걸린 인터폰 스크린에 열리지 않는 유리 문 밖 고모부가 보였다. “나도 어떻게 여는지 몰라.”
이사온 지 얼마 안 된 고모는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젊은 축인 내가 나섰다.
스크린 하단에 동그라미가 두 개 떠 있었다. 수화기 아이콘이 그려진 초록색과 붉은색 동그라미였다.
영상통화를 받듯 스크린 속 초록 동그라미를 눌렀다. 문이 열렸다.
스마트폰 사용자경험(UX)과 인지가 있어야 인터폰을 열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었다.
“아, 역시 젊은 사람이 잘 알아!” 작은고모부가 칭찬하듯 말했다.
스마트 인터폰을 들여다보았다. 차원이 다른 기술 혁신이었다. 20개는 돼 보이는 기능 아이콘을 누르자
무한한 서랍을 열듯 각각 세부 기능으로 들어갔다. 조작은 모두 터치스크린.
각 가구 간 통화는 물론이고 폐쇄회로(CC)TV 화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도 있었다.
감탄하는 동시에 조금 걱정도 했다. 고모는 올해 60대 초반이다. 디지털 문물에 익숙하지 않다.
보통 한국 장년층인 고모는 언제 이 기능을 다 쓸까? 다 익힐 수는 있을까?
고모를 동정하는 게 아니다. 나도 신기술 발전 속도에 처진다고 느낀다.
내가 편히 쓰는 요즘 문물은 인스타그램과 구글 오피스까지다. 젊은 친구들이 ‘뇌를 거기 꺼내 둔다’는
개념으로 쓴다는 노션도, 게임 스트리밍에 특화된 트위치도 안 쓴다. 틱톡으로 ‘쇼트폼’ 영상도 안 만들고
드론도 안 날리고 암호화폐에 묻어둔 자산도 없다. 새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 도태되는 걸까?
따라가는 게 휘둘리는 걸까? 개인별 기술 격차는 점점 커질 텐데 앞으로의 세계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거시적인 이야기를 할 게 아니라 20년쯤 뒤엔 내가 내 집에 찾아온 손님들의 문을 못 열어주면 어쩌지?
내 차의 수동변속기를 만지작거리며 돌아가는 길에 답 없는 문제들이 떠올랐다.
“도어록 다실 거죠?” 몇 주 뒤 인테리어 사장님의 질문에 정신이 들었다.
나는 헌 집을 고치는 중이고 그 집에는 열쇠를 돌려 여는 자물쇠가 달려 있다.
나는 러다이트 같은 신기술 반대자는 아니어도 모든 신기술에 기대고 싶지는 않다.
디지털 세상에 뇌를 적신 만큼 실물의 감촉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답했다. “아녜요. 저는 쓰던 자물쇠 쓸 거예요.”
인테리어 사장님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듯 나를 잠깐 쳐다봤다.
박찬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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