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앓던 어머니에게는 하루에 한두 병 정도 비상약처럼 드시는 드링크제가 있었다.
머리가 아프거나 몸살 기운이 있으면 약병을 찾았다. 어머니는 혼자 약병을 열지 못해 약 뚜껑을 따드렸다.
한 병을 드신 뒤에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통증이 줄어서였는지, 마음이 놓여서였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약의 일부 성분이 어르신들의 치매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걱정스러웠다. 그 후에 몇 번을 “어머니, 그 약 드시면 안 돼요. 기억력이 떨어지면 자식들 얼굴도
못 알아봐요”라고 말씀드렸다. 그 뒤에도 어머니는 몸이 아프면 약을 찾았다.
하지만 내가 치매에 좋지 않다고 말씀드리면 약병을 다시 내려놓았다.
두통과 몸살 기운으로 힘들어하면서도 끝내 드시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는 약보다 자식을 더 믿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치매를 늦추는 것이 어머니를 위한 일이라고 믿었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나이를 먹으며 몸의 통증을 경험하게 되자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이유 없이 몸이 무겁고, 여기저기 쑤시는 날도 생겨났다.
어느 날, 아내에게 몸이 으슬으슬하다고 말했더니, 심하기 전에 마셔두라며 어머니가 드시던
약 한 병을 나에게 건넸다. 몸이 조금 편해졌다. 몸의 열감이 약간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에
괜찮아질 것 같은 안도감도 들었다. 그 순간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아프실 때마다 찾던 그 약. “마시지 말까?” 하며 나의 동의를 구하던 어머니의 눈빛.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떨리는 손을 붙잡고 약을 드시지 않았다.
마음이 먹먹했다. 얼마나 아프고 힘드셨을까. 나는 어머니를 사랑해서 그 약을 막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것은 어머니의 삶보다 내가 두려워한 미래를 더 중심에 두었던 일이었다.
나는 오래 기억을 가지고 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쩌면 오늘 덜 아프고 안심할 수 있는 위안이 더 절실하셨을 수도 있다.
사랑과 이해는 같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사랑했지만, 어머니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충분히 보지 못했다.
어머니에게 그 약은 치매 위험을 가진 약이기 전에 아픈 몸을 달래주는 위안이었다.
견디기 힘든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작은 도움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내 눈으로만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면 우리 삶의 많은 관계가 그렇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지만 자녀의 세계를 다 알지 못한다.
자녀는 부모를 사랑하지만 부모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부부도, 친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상대를 사랑하면서도 자기 세계 안에서 사랑한다.
그래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더 어렵다.
나는 상담을 하면서도 같은 질문을 만난다. 나는 정말 이 사람을, 이 사람의 세계를 만나고 있는가를 묻는다.
그러나 나 역시 내 세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내담자의 아픔보다 해결책을 먼저 보고,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삶보다 바뀌어야 할 문제를 먼저 보는 경우도 있다.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그 질문 앞에 다시 선다.
그의 문제와 해결책을 말하기 전에 무엇을 아파하는가를 먼저 듣고자 노력한다.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대신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 이해하려 한다.
나에게 상담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를 함께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이제 안 계신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나는 조금씩 어머니가 되어 간다.
몸이 아픈 날이면 그 약을 찾던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씀드린다. “어머니, 많이 아프셨지요. 약 한 병 따 드릴까요?”
차명호 평택대 상담대학원 교수
[출처]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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