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면 유독 발걸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휴가를 나온 듯 빳빳하게 줄이 잡힌 군복을 입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청년들을 마주할 때다.
짙어진 신록 사이에 걸린, 보훈의 의미를 되새기는 현수막이 펄럭이는 이 계절이면 유독.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풍경이겠지만, 이 푸른 계절, 생동하는 청년들의 뒷모습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어온 미완성의 꿈이자, 끝내 이루지 못한 기도의 제목 같다.
듬직한 청년들의 어깨 위로 나도 모르게 혁준이의 얼굴이 겹쳐지곤 한다.
전 세계에서 10여 명에 불과한 희귀병을 안고 살아가는 내 아들이.
혁준이가 자라는 동안 나는 한 가지 소망을 품었다.
대한민국에서 아들을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상상해보는 풍경. 아들이 군복을 입고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이었다.
군인을 볼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수천 번도 넘게 기도를 올렸다.
먼저 그 청년의 안녕을 기도하고, 이어 혁준이도 저 청년처럼 건강하게 자라 군대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훈련소 앞에서 짧게 깎은 머리를 어색해하며 거수경례를 하는 그 평범한 통과의례가
내게는 세상 그 어떤 목표보다 간절한 꿈이었다.
내게 군복은 단순히 국방의 의무를 상징하는 의미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아이가 세상의 평범한 속도에 발맞춰 걷고 있다는, 가장 확실하고도 눈물겨운 증표였다.
남들 다 간다고 말하는 그곳에, 내 아들도 당당히 발을 내딛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갈망했다.
결국 혁준이는 군대에 갈 수 없었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이지만, 지금도 군복 입은 청년들을 보면 가슴 한구석이
아릿하게 저려오는 부러움까지는 어쩌지 못한다.
그 부러움은 이내 미안함으로 번진다.
평범한 군복 한 벌 입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마다, 혁준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묵묵히 웃어준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늘 남들이 보기에 그럴싸한 장면들만 편집(CUT)해서 보여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남들이 정해 놓은 기준에서 조금 비껴나 있는 아들의 진짜 삶(UNCUT)을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군복보다 더 빛나는 훈장들이 이미 가득했다.
아이는 매일 신체적 불편함과 편견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우며 당당하게 승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6월은 나라를 위해 자신을 던진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달이다.
그분들이 지켜낸 이 땅의 평화 위에서, 내 아들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
살아 보니 남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길을 걷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었다.
자신의 한계를 등지지 않고 매일 성실하게 나아가는 그 깊은 발걸음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을 이제야 배운다.
집에 돌아와 아들의 뒷모습에 마음의 말을 보탠다.
너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멋진 사람이라고.
네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세상 그 어떤 훈장보다 훨씬 더 무겁고 고귀하다고 말이다.
권오중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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