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공을 차다

by maverick8000 2026. 6. 24.

 

 

 

아마 마을 체육대회 비슷한 행사였을 게다. 어른들이 공을 차고 있었다. 

사십 대인 아버지도 소리를 지르며 공을 향해 달려가는 걸 보았다. 

그렇게 잘 차는 것 같진 않았는데 그게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의 공 차는 모습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가끔 그 장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낙엽송 골대가 세워져 있는 개울 옆 마을운동장은 우리들의 자랑거리였다. 

멀리 떨어진 초등학교까지 걸어가지 않아도 되었기에 주말이면 늘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여러 가지 풀들이 자라고 있어 잔디 구장이나 다름없었다. 

공을 차는 건 물론이고 비료 포대를 접어서 만든 글러브, 참나무를 깎아서 만든 배트로 어두워질 때까지 

야구를 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꿈의 놀이터였다.




아무래도 장비와 규칙이 복잡한 야구보다는 공을 더 많이 찼다. ‘축구 차다’란 말은 뒤늦게 나왔다가 사라졌다.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계절을 가리지 않고 공을 찼다.

잘못 찬 공이 개울로 날아가 둥둥 떠내려가기도 했고 운동장 가장자리에 묶어놓은 우리 집 소가

낡은 공을 밟아 터진 적도 있었다. 공을 차다 목이 마르면 개울로 달려가 얼음장에 엎드려 물을 마셨다.

겨울이라 물이 깨끗했기 때문이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축구 경기는 조금씩 살벌해지기 시작했다. 

동네 형들이 윗마을 아랫마을 팀과 돈내기를 한 터라 이기면 빵과 과자를 배부르게 먹었지만 

지면 으슥한 곳에서 각목으로 엉덩이를 맞아야 했다. 축구가 점점 싫어졌다. 운동장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공을 그리 잘 차지 못한다는 가슴 아픈 자각도 한몫 거들었다.



공을 차는 일을 멀리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관심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축구 구경은 여전히 신나는 일이었다. 텔레비전에서 국가대표의 경기를 중계하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이었다. 자취하는 주인집 안방이나 친구 집, 아니면 만화방이었다. 

다니던 학교에 축구부와 야구부가 있었다. 전국대회에 나가면 늘 1회전 탈락이었다. 

벌을 받으며 연습한 응원을 써먹을 기회가 없었는데 어느 해 축구부가 기적적으로 결승에 올라가 

기차와 전철을 갈아타며 동대문운동장에 가서 단체응원을 했다. 

상대 팀 학생들도 대구에서 단체로 올라왔다. 그날의 쾌감은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대학생이 된 뒤엔 과에 남학생이 적어 어쩔 수 없이 다시 공을 차야 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거듭 확인한 사실은 역시 나에겐 축구에 대한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응원이 적성에 맞았다.



하지만 축구는 나를 우아하게 감상만 하도록 놓아주지 않았다.

아직 그 무시무시한 80년대 군대 축구가 남아 있었다.

이웃 소대와의 회식비가 걸린 일요일의 축구는 늘 살벌했다. 뛰기 싫어도 뛰어야 했다.

선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해진 운동화를 신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는데 역시나 패하면 저녁에

어둑어둑한 세탁실에서 일렬로 줄을 서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병으로 진급한 뒤에야 비로소 골대 뒤편 산비탈로 내려가 가끔 철망을 넘어오는 공을 올려보내는,

적성에 대단히 잘 맞는 보직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상병 계급장을 달고 있던 어느 일요일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뒤지고 있던

우리 소대의 경기에 자원해서 들어갔는데 그만 상대 선수와 발목을 부딪치고 말았다.

뼈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의 군대 축구는 그렇게 종료 호루라기를 불어주었다.



공을 차본 지 오래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축구를 보며 살아간다. 

어떻게 저리 멀리, 정확하게 찰 수 있을까. 중앙선에서 골대 앞까지 수비수들을 모두 제치고 

공과 함께 달려갈 수 있을까. 측면에서 날아온 공을 절묘하게 머리로 돌려 골대 안으로 넣을 수 있을까. 

페널티킥을 차는 선수와 막으려는 골키퍼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물망을 흔드는 공이 사람처럼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우리를 대신해 인생의 공을 차는 선수들의 월드컵을 감상하다 보니 다시 저 옛날의 마을운동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지금까지 나는 몇 골을 넣었을까. 넣기나 했을까. 

또 한 경기가 끝났으니 운동장 가에 묶어놓은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김도연 소설가

 

[출처:중앙일보]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전 건설'  (0) 2026.06.29
과정이 주는 즐거움  (0) 2026.06.24
은마상가의 '손편지'  (0) 2026.06.24
어느 아버지의 미완성 기도  (0) 2026.06.24
'6·25 형제' 튀르키예  (0) 2026.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