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미국은 원자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테네시주 오크리지에
비밀 도시를 세우기 시작했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살 집을 빨리 짓는 게 난제였다.
벽과 지붕 등 집을 이루는 주요 부분을 공장에서 미리 만들어 집터에서 조립했다.
이렇게 조립식 주택 약 3000채가 빠르게 들어섰다. 빈 들판이 2년여 만에 7만명 넘게 사는 도시로 변했다.
공장에서 제품처럼 집을 만드는 초고속 건축 기술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숨은 공신이었던 셈이다.
▶영화 ‘제5원소’에 나오는 미래 아파트는 집이라기보다 거대한 가전제품처럼 보인다.
침대가 벽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고, 버튼을 누르면 냉장고가 위로 올라가 그 자리에 샤워실이 나타난다.
‘아파트 공화국’ 한국의 주거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친 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는 “집은 사람이 살기 위한
기계”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집과 기계의 경계가 흐려진 주택이 현실에 등장하고 있다.
공장에서 방·거실·욕실을 만든 뒤 냉장고·에어컨·조명과 인공지능까지 넣어 레고처럼 조립하는 주택이다.
▶삼성전자가 ‘AI 모듈러 홈’을 판매하겠다고 나서 화제다.
목조주택 업체와 협업해 공장에서 만드는 이 집에는 AI로 제어되는 에어컨·냉장고·히트펌프 보일러·
스마트 조명·현관 카메라 등이 사물인터넷으로 연결돼 있다.
QR 코드를 찍으면 미리 설치된 가전과 스마트 기기를 사용자 계정에 한꺼번에 연결해 곧바로 쓸 수 있다.
30평형 단층 주택 기준으로 AI·스마트 기기 옵션을 더해도 건축비는 1억8000만원 안팎이다.
‘삼전(三電)건설’의 탄생이다.
▶LG전자도 가전과 냉난방공조, 태양광 설비를 갖춘 소형 주택 ‘스마트코티지’를 완제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두 회사의 방식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다. 냉장고나 세탁기 한 대를 파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집 전체를
AI와 에너지·보안 서비스가 작동하는 플랫폼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모듈러 주택은 주택 공급난을 덜 수 있는 대안으로도 주목받는다.
공사 기간을 기존 방식보다 30% 이상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이미 13층 모듈러 공공주택이 들어섰고, 20층 안팎의 수백 가구 단지도 건설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모듈러 아파트 발주 물량이 적어 건설 단가가 기존 철근콘크리트 방식보다 비싸고,
고층으로 갈수록 모듈 접합부 설계가 까다로워지며 방수와 진동 문제도 생길 수 있다.
반도체를 세계 일등으로 키운 삼성전자의 모듈러 홈이 주택난에 돌파구를 열지 지켜볼 일이다.
출처 : 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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