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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우리는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

by maverick8000 2026. 6. 29.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팔레스타인의 거리를 보면 할 말을 잃는다.

하지만 잔해 사이에서 목발을 짚고 한쪽 다리만으로 공을 차는 난민 축구팀을 보면

'축구란 도대체 인간에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축구란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희로애락의 삶 자체다.

영화가 된 영국 작가 닉 혼비의 축구 회고록 '피버 피치'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열한 살 때 부모는 이혼하고 아버지는 아들과 대화하기 위해 아스날 팀의 경기장에 데려간다.

소년은 감정적으로 허물어진 데다 축구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날 아스날에 열광하고 만다.

아버지가 프랑스로 이주한 후에도 혼비는 친구와 함께 입석 구역에서 아스날을 지켜보며 울고 웃는다.

학업도 진로도 연애도 아스날과 함께한다.

 

축구는 메시지를 주기에 심오하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와 싸우고 성적은 떨어지고 반항심만 남았다.

학생 누구나 머리를 길렀는데 나만 삭발하고 등교했다. 그때 월드컵이 열렸고 파울로 로시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이탈리아 최정상의 공격수였다가 승부 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나락에 떨어졌다.

2년이나 출장 정지됐다가 1982년 월드컵 대표에 간신히 뽑혔지만 부진했다.

"왜 데려왔는가?"하는 비난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는 지코, 소크라테스 같은 스타들이 포진한 브라질 팀과 싸워 혼자서 세 골을 넣는다.

폴란드 독일과 싸워서도 골을 넣어 월드컵 득점왕이 되고 이탈리아는 우승했다.

'추락한 선수가 부활하는 드라마'였다. "축구는 인간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준다"는 메시지에 나는 위로받았다.

 

축구는 약자가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여 '언더독의 기적' '가능성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2002년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를 다 이겼다.

식민지이던 나라가 제국주의 열강이던 나라들을 이렇게 연거푸 꺾은 사례는 축구사에 전무하다.

우리는 실력만으로 이긴 게 아니었다.

화려한 드리블, 긴 크로스와 수비를 단숨에 뚫는 돌진, 절묘한 세트 플레이는 그들이 더 능숙한 것 같았다.

하지만 축구는 승부차기라도 좋으니 골인만이 승부를 가른다. 단 한 번의 골인이 대세를 바꾸기도 한다.

백 번의 강력한 슈팅도 노골이면 허무하다.

이번 월드컵에서 무패로 예선을 통과한 튀르키예가 한 수 아래 파라과이에 1분 4초 만에 한 골을

허용한 뒤에 수십 차례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패하고 본선 탈락한 것. 이것이 인생과 닮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축구란 다른 숱한 스포츠처럼 '무엇이 아름다운가?' 하는 질문에 답한다.

무수한 반복 훈련으로 '무의식의 눈'이 생겨 공과 상대, 동료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는 능력,

달리다가 돌고 달리다가 멈추는 속도 조절력은 감동을 준다.

화려한 스트라이커의 골 세리머니가 있기 위해 묵묵히 뛰는 수비수의 마음에 새겨진

'나는 팀의 일부'라는 철학 역시 가슴에 오래 남는다.

 

권기태 소설가

 

출처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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